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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 관련 질문과 답변
이번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청소년 유해 간행물' 판정과 관련하여 haja님께서 이글루에 몇 가지 질문을 남기셨습니다. 아래 글은 그에 대한 답변이며, 해당 포스트에 단 덧글과 같은 내용입니다.


Q) 만화책, 사진집, 괴담 모음집, 네티즌 소설, 외설서적, 전자간행물에 대해 19금 판정을 내리는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장르 문학에 대해 19금 판정을 내리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자, 장르의 생명줄을 담보로 한 검열인가?

- 저는 모든 매체에 대해 19금 판정(정확히는 ‘청소년 유해 간행물 판정’)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연령 제한의 잣대가 되는, 시각적인 폭력성이나 선정성이 아닌, ‘텍스트 그 자체’의 폭력성을 문제 삼아 19금 판정을 내리는 것은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특히나 이 단편집에 참여한 작가로서 한국 간행물 윤리 위원회(이하 ‘간윤위’)에 묻고 싶은 것은 대체 어떠한 잣대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 ‘청소년 유해 간행물’이라는 판정을 내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심의 기준이 명시되어 있다고는 하나, 과연 그 기준들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객관적인(그리고 절대적인) 기준일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또한 그 기준대로라면 갖은 살인과 범죄가 상세히 보도되는 TV뉴스도 ‘청소년 유해’ 딱지를 받아 마땅합니다.
네, 이번 판정은 '장르의 생명줄을 담보로 한 검열'이 맞습니다. 간윤위에서는 ‘문학의 폭력성에 대한 심의제재의 전례로 남기자’는 취지로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간윤위에서 내린 결정은 ‘공포’라는 장르에만 취해진 조치이지, 기타 ‘문학’이라 불리는 다른 진영에 내려진 조치가 아닙니다.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한국이란 나라에서 ‘공포’라는 장르 문학은 그 어느 장르보다 천대 받고, 도외시되는 장르입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은 지금까지 ‘오싹오싹 공포체험’이나 ‘쉿! 돌아보지 마!’와 같은 괴담 모음집과 동일시되던 장르의 척박한 토양에서 어렵사리 씨를 뿌리고 틔운 싹입니다. 그런 와중에 ‘청소년 유해 간행물’이라는 빨간 딱지를 붙여 버리는 행위는 싹을 짓밟아 버리는 검열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Q) 선정적인 저작물에 대해 19금 판정을 내리는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폭력적인 저작물에 대해 19금 판정을 내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가?

- 지금의 현실에서 선정적인 저작물이든, 폭력적인 저작물이든, 19금 판정을 내리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Q) 장르 문학은 만화책, 사진집, 괴담 모음집, 네티즌 소설, 외설서적, 전자간행물과 차별화되는 ― 심의에서 다른 잣대를 적용받아야 하는 ― 고품격 저작물인가?

- 장르 문학은 심의에서 다른 간행물과 차별화된 잣대를 적용받아야 하는 ‘고품격 저작물’이 (절대) 아닙니다. 과연 객관적으로 ‘고품격 저작물’이라 판단될 수 있는 저작물이 존재할까요? 저는 간행물에 대한 심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굳이 심의의 잣대를 들이대겠다면 무차별적으로 수집된 이메일 주소로 유포되어 청소년이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열람할 수 있는 온갖 성인사이트의 스팸메일과 같은 인터넷 매체부터 심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장르 문학을 ‘고품격 저작물’이라 불러달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간윤위가 검열의 잣대를 들이대겠다면 ‘장르 문학’만이 아닌, 모든 문학 진영에 동일하게 그 잣대를 들이대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번 판정은 그 형평성에 있어서도 어긋나 있습니다.


Q) 19금 판정을 ‘사실상의 판매금지조치’로 받아들인다면, 모든 종류의 심의와 규제를 완전하게 그리고 영구적으로 폐지하지는 않는(즉 청소년들이 모든 종류의 콘텐츠에 무제한으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19금 판정 대신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혹은 할 수 있는가?

- 최선의 규제(굳이 규제가 있어야 한다면)는 청소년 그네들의 자정(自淨)일 것입니다. 청소년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는 연령의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매체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훨씬 더 자유롭게 연령 제한을 넘나듭니다. 청소년들이 모든 종류의 컨텐츠에 무제한으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미 현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과연 이런 현실에서 어른들이 청소년 유해 간행물 딱지나 붙이는 게 현명한 심의이며 규제일까요? 저는 그것보다 청소년들에게 차라리 득과 독을 판단할 수 있는, 혹은 허구와 현실을 구별해낼 수 있는 분별력을 길러 주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Q) 만약 공포소설에 대하여 ‘그러한 표현’을 허용한 이후, 만화책, 사진집, 괴담 모음집, 네티즌 소설, 외설서적, 전자간행물의 저작자와 출판사가 자신들의 책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이미 말씀드렸듯이 지금의 현실에서는 모든 매체에 대한 심의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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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의 19금 판정에 관해 by haia
  • 한국공포문학단편선 by matadora
  • 폭력성, 포악성으로 청소년유해간행물(19금)판정을 받은 문학 단행본들 by haia
  • 소식 :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청소년 유해 간행물 선정, 그 후 by sabbath
  •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재심 청구 부결에 대하여 by 김종일
# by 김종일 | 2007/01/29 23:12 | 달콤쌉싸름한 잡담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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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1/29 23:28
저 역시 심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장르문학의 출발단계에서 그 싹을 밟아버린 결정, 상당히 불만스럽군요.

오랫만이에요, 종일님. 요즘 연구소에서 msn을 접속하지 못하는 터라, 못 뵌지 오래된 것 같네요. 부디 새해에도 건강하시기를.
Commented by 김종일 at 2007/01/30 00:19
맞습니다.
ArborDay님, 안 그래도 그리웠답니다. 연구소에 계시는군요. 새해에는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ArborDay님도 늘 건강하세요~ ^^
Commented by haia at 2007/01/31 01:01
김종일, 친절한 덧글과 관련글에 감사드립니다. 처음 올린 질문(성)글이 명백히 누군가를 지목하여 쓴 것이 아니기에 질문으로서 시선이나 의미가 모호합니다. 만약, 질문의 의도와 답변내용이 엇갈린다면 질문 자체의 부실함 때문일 것입니다. 저의 의견이나 부연설명을 다시 덧글로 늘어놓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이 문제에 관한 보론을 올려두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려 깊은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김종일 at 2007/01/31 13:01
haja님, 별 말씀을요. ^^ 저도 소설, 영화만큼이나 만화도 즐겨 봅니다. 전달 매체의 차이는 약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에 바탕을 둔 저작물이라는 점에서 만화를 (검열의 제재 없이) 창작하고 즐길 수 있는 권리도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haia at 2007/01/31 17:43
덧글을 수정해서 올리다 보니 '김종일' 뒤에 경칭이 빠졌습니다.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꾸벅~
Commented by 김종일 at 2007/01/31 23:48
haja님, 그 점은 그러리라고 짐작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Commented by miru at 2007/07/21 14:21
우연히 들어온 miru입니다
저는 저 '한국공포문학단편선'를 사려고 했는데 19금 판정때문에
못 사게 됬다죠;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소설이나 영화,음악등에 대한 검열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데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드니까 화가 더 나네요ㅠ
솔직히 김종일님 말씀대로 어차피 허울뿐인 건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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